황소연 | 빅이슈코리아
보물과 타이밍
황소연 (빅이슈코리아)
월간 매거진 <빅이슈> 에디터 입니다.
일에서 생긴 스트레스는 퇴근 시간 전에, 사무실 내부처럼 주로 일하는 공간에서 푸는 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혼자 일하는 날도, 함께 일하는 날도 같다. 소통하든 고민을 하든.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나의 경우 그 압박감은 새롭고 인기 있는 것들을 찾는 데서 온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뭔가를 찾다 보면 어릴 적 소풍날 했던 보물찾기가 떠오른다. 내 눈에 띄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유난히 잘 발견되는 것 같고, 내가 찾은 ‘보물’보다 다른 보물이 더 커 보인다.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됐는지 계산하는 건 아니라서 그 총량은 잘 모르겠다. 오늘 발견한 보물을 막 세공하는 사이 내가 놓친 것 같은 보물이 휙 곁을 지나간 건 기억난다. 다음 릴스로 손을 움직이는 속도다.
몇 년간 잡지를 만들면서 온갖 콘텐츠를 ‘찍먹’하는 습성이 생겼다. 정신이 없다. 웃다 울다 미간을 찌푸리기도 한다. 적응 될라치면 또 다른 챌린지가 점령하는 숏폼을 보고, 새로 나온 앨범을 듣고, 책을 읽고, 뉴스레터를 열고, 예능과 다큐멘터리를 확인하고, 유튜브 댓글 창에 들어간다. (소셜커머스 상품 페이지에도 종종 재미있는 후기가 있다.) 사회적 사건과 경향도 부족한 역량이나마 들여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뉴스와 주간지를 확인하고 며칠에 한 번 오프라인 서점에 가는데, 어째 사람들의 관심사를 찾다가 결국 내 관심사를 찾는 주객전도를 겪는다.
이미 늦었다
내가 발견한 모든 게 유의미하고 재미있는 것들이라면 에디터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에게 종종 “그 드라마 해피엔딩이야?”, “그 영화 무서워?”라는 질문을 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거 재밌어?”와 같은 의미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행착오 없이, 내 마음이라는 목적지까지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올 수 있는 콘텐츠인지 물었던 건 아니었을까. 가장 효율적인 에디팅을 하고픈 욕구였던 거다. 영화와 책, OTT 시리즈를 요약해주는 유튜브 콘텐츠의 유행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는 뭔가에 정확히 화살을 명중시키는, 타깃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타깃에게선 응답이 없었고 메아리만 들렸다. ‘참 희한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노력의 부족을 떠올렸다. 갯벌에 발이 빠진 듯했다. 글을 쓰고 나서 ‘이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원하는 콘텐츠’라고 나를 속이는 기분도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콘텐츠의 파도 속에서 보물 같은 주제를 발견하더라도, 이미 늦었다는 예감이 엄습한다는 거였다. 에디팅은 인생처럼 타이밍일 텐데, 하나의 주제를 우직하게 탐구하려고 하면 ‘숏폼 바이브’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속도감 있게 트렌드를 짚으려 하면 깊이가 없고 대충 쓴 것 같았다. 업무시간 내 스트레스 해소는 빠르게 잊혔다.
괴산 팔루자와 뚝섬로1나길 헤이그라운드
여느 날처럼 ‘인급동’과 구독 목록을 쭉 훑다가 <문명특급(문특)>의 <위대한 재쓰비> 프로젝트를 발견했다. 지난 8월 시작된 이 기획은 제작비 3백만 원으로 재재, 승헌쓰, 가비를 혼성그룹으로 데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진행자인 재재의 비혼식 개최부터 청소년들과의 두발 자유 도장 깨기, ‘풀피리 선생님’을 찾아갔던 에피소드 등 오래전부터 문특의 팬이었기에 이 프로젝트도 정주행했다.
재쓰비는 ‘괴산 고추 축제’를 ‘괴산팔루자’로, ‘추풍령 가요제’를 ‘추첼라’로 부르며 성공적으로 첫 무대를 꾸몄다. 세 사람은 뉴미디어 환경에서 멀티 예능인으로 성장했고,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파악하는데 능했다. 그런 세 사람이 내놓은 첫 데뷔 싱글은 ‘너와의 모든 지금’이라는 제목의 응원가이자 행진곡. 힙한 무드를 내려놓은 서정적인 멜로디가 화사한 스포트라이트 같은 곡이다. 노래 가사는 “오늘, 내일, 일주일만 생각한다”는 내 말버릇을 떠올리게 했다. 오늘, 내일, 일주일이 지나면 ‘이 보물은 끝나 버렸나?’ 자조하는 나를 생각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렇게 재쓰비는 또 내 취향이 되었다. 관심사를 구축하는 건 도전이었구나. 이미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자유자재로 내놓을 줄 아는 이들이 굳이 혼성그룹을 결성해, 2세대 아이돌 감성을 선택했듯이. 노래 가사에 울고 재쓰비 라방에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울고 웃었 다’라는 말은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참 잘 어울린다. 이 표현이 살아 남아온 시간 동안 사람들이 느꼈을 감동을 상상하게 한다. 그들이 잡지의 독자였다면 무엇을 좋아했을까. 어떤 것에 푹 빠져서 울고 웃었을까. 사람들은 매일 도전하고 있다. 《빅이슈》를 읽을 도전자들에게 어떤 콘텐츠를 전해야 할까.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어
나는 타깃에 명중하는 짜릿함만이 잡지를 비롯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의 유일한 재미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과 번민을 듣고 싶고, 말하고 싶다. 컴퓨터를 리셋하는 듯한 쾌감에 중독되어 ‘에이, 다시 다시’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에디팅의 실패와 성공을 분리해서 실패는 저 역사의 뒤안길에 치워두고 싶지 않다. 두 경험을 이었을 때만 나타나는 새로운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 그걸 영감과 관점의 재료로 삼고 싶다.
에디터로 일하는 건 타인의 관심사를 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 취향을 쌓는 일이기도 했다. 중요한 트렌드를 찾다 그저 내 타입의 뭔가를 발견했더라도, 그 재미가 온몸으로 막아도 올 내일과 그다음 날까지 이어진다면 그것만으로 꽤 좋지 않나. 나는 오늘도 거기에 만족하는 삶을 상상한다. 다른 타이밍은 놓쳐도 취향의 타이밍은 놓치고 싶지 않다. 일의 재미를 넘어 인생의 재미를 찾는 하루하루를 꿈꾼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타깃은 나였던 걸까.
이 글은 '2024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황소연 | 빅이슈코리아
보물과 타이밍
황소연 (빅이슈코리아)
월간 매거진 <빅이슈> 에디터 입니다.
일에서 생긴 스트레스는 퇴근 시간 전에, 사무실 내부처럼 주로 일하는 공간에서 푸는 것이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혼자 일하는 날도, 함께 일하는 날도 같다. 소통하든 고민을 하든. 물론 어려운 일이다. 나의 경우 그 압박감은 새롭고 인기 있는 것들을 찾는 데서 온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뭔가를 찾다 보면 어릴 적 소풍날 했던 보물찾기가 떠오른다. 내 눈에 띄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유난히 잘 발견되는 것 같고, 내가 찾은 ‘보물’보다 다른 보물이 더 커 보인다.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해소됐는지 계산하는 건 아니라서 그 총량은 잘 모르겠다. 오늘 발견한 보물을 막 세공하는 사이 내가 놓친 것 같은 보물이 휙 곁을 지나간 건 기억난다. 다음 릴스로 손을 움직이는 속도다.
몇 년간 잡지를 만들면서 온갖 콘텐츠를 ‘찍먹’하는 습성이 생겼다. 정신이 없다. 웃다 울다 미간을 찌푸리기도 한다. 적응 될라치면 또 다른 챌린지가 점령하는 숏폼을 보고, 새로 나온 앨범을 듣고, 책을 읽고, 뉴스레터를 열고, 예능과 다큐멘터리를 확인하고, 유튜브 댓글 창에 들어간다. (소셜커머스 상품 페이지에도 종종 재미있는 후기가 있다.) 사회적 사건과 경향도 부족한 역량이나마 들여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뉴스와 주간지를 확인하고 며칠에 한 번 오프라인 서점에 가는데, 어째 사람들의 관심사를 찾다가 결국 내 관심사를 찾는 주객전도를 겪는다.
이미 늦었다
내가 발견한 모든 게 유의미하고 재미있는 것들이라면 에디터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들에게 종종 “그 드라마 해피엔딩이야?”, “그 영화 무서워?”라는 질문을 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거 재밌어?”와 같은 의미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행착오 없이, 내 마음이라는 목적지까지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올 수 있는 콘텐츠인지 물었던 건 아니었을까. 가장 효율적인 에디팅을 하고픈 욕구였던 거다. 영화와 책, OTT 시리즈를 요약해주는 유튜브 콘텐츠의 유행처럼.
사람들이 좋아하는 뭔가에 정확히 화살을 명중시키는, 타깃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타깃에게선 응답이 없었고 메아리만 들렸다. ‘참 희한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노력의 부족을 떠올렸다. 갯벌에 발이 빠진 듯했다. 글을 쓰고 나서 ‘이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원하는 콘텐츠’라고 나를 속이는 기분도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콘텐츠의 파도 속에서 보물 같은 주제를 발견하더라도, 이미 늦었다는 예감이 엄습한다는 거였다. 에디팅은 인생처럼 타이밍일 텐데, 하나의 주제를 우직하게 탐구하려고 하면 ‘숏폼 바이브’와 멀어지는 것 같았다. 속도감 있게 트렌드를 짚으려 하면 깊이가 없고 대충 쓴 것 같았다. 업무시간 내 스트레스 해소는 빠르게 잊혔다.
괴산 팔루자와 뚝섬로1나길 헤이그라운드
여느 날처럼 ‘인급동’과 구독 목록을 쭉 훑다가 <문명특급(문특)>의 <위대한 재쓰비> 프로젝트를 발견했다. 지난 8월 시작된 이 기획은 제작비 3백만 원으로 재재, 승헌쓰, 가비를 혼성그룹으로 데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진행자인 재재의 비혼식 개최부터 청소년들과의 두발 자유 도장 깨기, ‘풀피리 선생님’을 찾아갔던 에피소드 등 오래전부터 문특의 팬이었기에 이 프로젝트도 정주행했다.
재쓰비는 ‘괴산 고추 축제’를 ‘괴산팔루자’로, ‘추풍령 가요제’를 ‘추첼라’로 부르며 성공적으로 첫 무대를 꾸몄다. 세 사람은 뉴미디어 환경에서 멀티 예능인으로 성장했고,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파악하는데 능했다. 그런 세 사람이 내놓은 첫 데뷔 싱글은 ‘너와의 모든 지금’이라는 제목의 응원가이자 행진곡. 힙한 무드를 내려놓은 서정적인 멜로디가 화사한 스포트라이트 같은 곡이다. 노래 가사는 “오늘, 내일, 일주일만 생각한다”는 내 말버릇을 떠올리게 했다. 오늘, 내일, 일주일이 지나면 ‘이 보물은 끝나 버렸나?’ 자조하는 나를 생각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그렇게 재쓰비는 또 내 취향이 되었다. 관심사를 구축하는 건 도전이었구나. 이미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자유자재로 내놓을 줄 아는 이들이 굳이 혼성그룹을 결성해, 2세대 아이돌 감성을 선택했듯이. 노래 가사에 울고 재쓰비 라방에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울고 웃었 다’라는 말은 콘텐츠 홍수의 시대에 참 잘 어울린다. 이 표현이 살아 남아온 시간 동안 사람들이 느꼈을 감동을 상상하게 한다. 그들이 잡지의 독자였다면 무엇을 좋아했을까. 어떤 것에 푹 빠져서 울고 웃었을까. 사람들은 매일 도전하고 있다. 《빅이슈》를 읽을 도전자들에게 어떤 콘텐츠를 전해야 할까.
아무것도 아닌 건 아무것도 없었어
나는 타깃에 명중하는 짜릿함만이 잡지를 비롯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의 유일한 재미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민과 번민을 듣고 싶고, 말하고 싶다. 컴퓨터를 리셋하는 듯한 쾌감에 중독되어 ‘에이, 다시 다시’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에디팅의 실패와 성공을 분리해서 실패는 저 역사의 뒤안길에 치워두고 싶지 않다. 두 경험을 이었을 때만 나타나는 새로운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 그걸 영감과 관점의 재료로 삼고 싶다.
에디터로 일하는 건 타인의 관심사를 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 취향을 쌓는 일이기도 했다. 중요한 트렌드를 찾다 그저 내 타입의 뭔가를 발견했더라도, 그 재미가 온몸으로 막아도 올 내일과 그다음 날까지 이어진다면 그것만으로 꽤 좋지 않나. 나는 오늘도 거기에 만족하는 삶을 상상한다. 다른 타이밍은 놓쳐도 취향의 타이밍은 놓치고 싶지 않다. 일의 재미를 넘어 인생의 재미를 찾는 하루하루를 꿈꾼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타깃은 나였던 걸까.
이 글은 '2024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