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커뮤니티란 무엇인가 <2024 에세이 공모전>

2024-11-29

도넛 | 베이크

커뮤니티란 무엇인가  



도넛 (베이크)

소셜액션네트워크 베이크에서

프로덕트를 담당하고 있는

길순이 덕후 도넛입니다.



베이크(Vake, Value Make의 합성어)는 월드비전이라는 비영리 기관의 사내 벤처로 시작해 작년 3월 영리 법인으로 독립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워크숍과 스터디, 프로토타입 실험을 거쳐 서비스를 런칭하기까지 단 한 번도 쉬운 적은 없었지만, 작년 여름 맞닥뜨린 벽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실험의 결과로 서비스의 틀은 만들었는데, 우리가 원하는 성장과 변화가 너무 요원해 보였다. 처음으로 돌아가 미션, 비전을 점검하고 비즈니스 모델과 성장 동력을 파헤치는 치열한 시간을 가졌다.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 참여하는 경험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게 한다’는 것이 베이크의 미션이었고, 그 경험은 ‘액션’이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문제는 이걸 잊고 어느새 제품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베이크를 ‘업무’로만 대해온 나였다. 열심히 액션을 만들고 참여해왔지만 그 동기는 내가 진짜 해결하고 싶은 문제나 만들고 싶은 변화가 아닌 ‘서비스 활성화’ 혹은 ‘성장’이었다. 내가 쓰지 않는 제품을 팔고, 내가 사용하지 않는 서비스를 사용하라는 말이 얼마나 진정성 없고 공허한 말인지 잊고 있었다. 


한 사람의 베이커(Vaker, 베이크 사용자를 지칭)로서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봤다. 마음 속 한 구석을 자꾸 불편하게 하는, 네가 꼭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뭐야? 그 때 마침 헤이그라운드의 마스코트 길순이가 생각났다. 난 원래 고양이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몇 년 동안 길순이를 지켜보면서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다. 길순이를 더 이해하기 위해 책도 사보고, 간식도 챙겨주고, 아침마다 놀아주며 사진을 찍어 팀 슬랙 채널에 올리는 게 루틴이 되었다(마치 애엄마가 자기 자식 사진 단톡방에 올리는 것마냥). 그치만 노묘가 된 길순이는 종종 아팠고, 모두의 사랑을 받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길냥이였기에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앞발 기형이 더 심해져 못 걷게 되면 어쩌지? 병이 들면 치료비가 많이 들텐데. 길순이는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는데 누가 쉽게 입양을 할 수나 있을까? 게다가 길순이는 이미 입양 실패의 역사가 있는 아이다. 


이런 고민을 안고 세계 고양이의 날을 기념해 ‘길순이의 하루(https://gilsoon.vake.io/)’라는 액션을, 아주 조용히 열었다. 베이크 운영자로서의 입장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베이커로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길순이를 잘 돌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헤이그라운드 1층에 포스터 하나 붙였을 뿐인데 길순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액션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이 꾸준히 모였다. 첫 몇 달은 다들 지켜보기만 했지만, 연말에 길순이 달력을 만들면서 조금씩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길순이 달력은 오픈 당일 완판이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수익은 아직까지도 길순이 돌봄비로 계속 쓰이고 있다. 


고비는 올해였다. 선천적으로 기형인 길순이의 앞발이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이른 휴가를 다녀온 사이 여러 사람들이 글을 올렸다. ‘길순이가 너무 아파 보인다’, ‘병원에 데려가야 할 것 같다’. 내가 자리를 비워 길순이를 제대로 못 돌본 것 같아 조급한 마음에 섣부르게 포획을 시도했다.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었지만, 세 차례의 시도는 전부 실패로 돌아갔고, 놀란 길순이는 아픈 발로 도망쳐 집을 나가고 말았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너무 섣부르게 포획을 시도했나? 전문가를 불렀어야 하나? 길순이가 아예 떠나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돼서, 돕고 싶어 한 일이었지만 다 내 잘못 같았다. 


다행히 길순이는 멀지 않은 곳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처음엔 경계가 심해 차 밑에 숨거나 도망가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간식도 먹고 다가오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베이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대부분 헤이그라운드 입주사 직원들이었는데, 새로운 사람들은 대부분 성수동 주민이었다. ‘불쌍한 길냥인 줄 알았는데 얘가 유명한 길순이었네요’, ‘길순이 멀리 안 가고 여기서 놀고 있어요’ 마치 파파라치라도 된 듯 길순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은 사진과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또 한 번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아, 길순이는 나의 고양이가 아니었지. 처음부터 함께 길순이를 돌보려고 만든 액션인데, 또 어느새 내가 주도하려 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길순이가 헤그 마당을 벗어나면서부터 진정한 공동육묘(?)가 이루어졌다. 우선 성수동에 살지 않아 재택근무나 외근으로 자주 자리를 비우는 나는 전처럼 길순이를 자주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순이의 밥그릇은 늘 사료로 채워지고, 깨끗한 물과 간식이 제공됐다. 내가 아니어도, 내가 볼 수 없는 시간에도 길순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가 계속 업데이트 되고 있다. 운영자로서 혼자 고생하는 것이 아닌,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커뮤니티가 무엇인지 길순이를 통해 경험하고 있다. 솔직히 전보다 지금이 참여자로서는 훨씬 재미가 있다.


아직도 길순이는 집을 나간 상태다. 며칠 전, 집 나간 후 처음으로 다시 집에 들른 사진이 올라와서 모두를 흥분케 했지만(그 역시 내가 아닌 다른 분이 제보한 것), 아직 완전히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그치만 100여 명의 베이커가 함께 만들어가는 ‘길순이의 하루’라는 커뮤니티 덕에 불안하지 않다. 길순이가 돌아오든 돌아오지 않든 함께 길순이를 돌보고 있으니까. 예전에는 나의 월요병을 낫게 해준 고마운 길순이었는데, 올해는 업무에 있어서도 가장 큰 인사이트를 주었다. 커뮤니티가 무엇인지, ‘길순이의 하루’를 통해 알아가고 있다. 


길순아 너무 고마워, 앞으로도 네가 성수동 슈스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도와줄게! 





이 글은 '2024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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