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틈 사이로 스미는 <2024 에세이 공모전>

2024-11-29

정한별 | 향기내는사람들

틈 사이로 스미는  

정한별 (향기내는사람들)

'히빈다움'을 고민하는

히즈빈스 브랜드 커뮤니케이터입니다.

나무처럼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2024년 한 해, 일하며 만난 예상치 못했던 재미의 순간이 언제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밤늦게까지 동료들과 함께하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물론 그 시간이 매일, 자주 있다면 괴로운 일일지 몰라도 주로 머리를 쓰지 않는 단순한 일을 하며 삼삼오오, 오손도손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제게는 퍽 재밌는 순간으로 남았나 봅니다.


히즈빈스는 매년 4월이 되면 장애인의 날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연초부터 기획으로 바쁘고, 3월에는 실행을 앞두고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올해는 ‘나란히 빛나는 꿈’이라는 주제로 서로의 꿈을 나누는 프로그램들을 준비했습니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어떤 선물을 드리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꿈을 응원한다는 의미를 담아 양말목으로 만든 네잎클로버 키링을 드리기로 합니다. 그런데 완성품을 사려고 보니 웬걸, 가진 예산으로는 구매할 수 있는 수량이 턱없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반면 원재료인 양말목은 훨씬 저렴한 가격에 한참을 쓰고도 남을 양을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아끼고 적은 수량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각자의 2시간을 모아 키링을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더 많은 이에게 진심 어린 응원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하나를 완성하는 데 2분. 본사 직원들과 매장 매니저, 그리고 장애인 바리스타까지 근무를 마치고 한데 모여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었습니다. 손으로는 열심히 키링을 만들면서 평소 사무실에서는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참 나누던 밤이 저는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초과근무로 기억될 수도 있을 이 밤이 저에게 재미와 의미로 남은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떠올리면 ‘환대’라는 단어가 같이 떠오릅니다. 히즈빈스의 핵심 키워드이기도 한 환대는 올 한 해 히즈빈스 리브랜딩을 진행하며 가장 많이 곱씹었던 단어이기도 합니다. 환대에 대해 한 동료는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기꺼이 내 삶에 맞이하는 것, 나 또한 누군가에게 손님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 이 정의로 보자면 저는 참 환대와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내 삶에 맞이하는 것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손님이 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타인에게 선뜻 도움을 요청하지도, 속내를 비치지도 않는, 즉 곁을 내주지 않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런 저에게 동료들은 환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혼자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도록 안전한 기지가 되어주었고, 도움에 응함으로써 환대를 보여주었습니다. 나에게만 초점을 맞춘 ‘어떻게 하면 환대를 베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우리에게 초점을 맞춘 ‘어떻게 하면 환대를 주고받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확장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불던 초봄, 우리는 마치 부업을 위해 모인 사람들처럼 양말목을 사이에 두고 일사불란했습니다. 만드는 법을 알려주느라, 예쁘고 정확하게 만드느라, 만든 것을 한데 모으느라 제각기 분란했지요. 먼지는 날리고 채워야 하는 할당량(?)의 압박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즐거웠습니다. 히즈빈스를 찾는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기뻤지만, 고된 업무로 지친 뇌가 단순 반복 작업 덕분에 쉬는 것 같았거든요. 말랑말랑해진 분위기에, 공과 사를 구분한다며 말을 아끼고 조심하던 공적인 정한별이 살짝 느슨해집니다. 느슨해진 틈 사이로 질문이 오가며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갑니다. 크고 투박한 손을 가진 동료가 누구보다 섬세하고 빠르게 만들어내는 것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디자인을 전공한 동료에게 색 조합 꿀팁을 배우기도 합니다. 업무할 때는 몰랐던 누군가의 다채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가득합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가장 재미있던 순간을 떠올리며 또 한 번 실감합니다. 혼자서도 재밌을 수 있겠지만, 함께하면 더 재밌다는 것을요. 피곤하고 힘든 순간에도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힘들기만 한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러니 앞으로도 다른 사람이 언제든 오갈 수 있도록 제 마음과 시간에 약간의 틈을 두겠다고, 그렇게 환대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글은 '2024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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