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사랑이라는 이유로 <2025 에세이 공모전>

기후솔루션 | 코멧

사랑이라는 이유로  


코멧 (기후솔루션)

늘 자라기 위해 애쓰되, 

늘 따뜻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엄마가 뭘 하며 쉴 때 가장 행복한지, 뭘 먹을 때 가장 즐거운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참 부럽습니다.


엄마는 늘 다른 이를 챙기느라,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됐습니다. 어린 제 손을 잡고 2주에 한 번 꼬박꼬박 찾아가 묵직하게 책을 빌려오던 동네 도서관도, 예쁜 책갈피를 만들어 제자들에게 선물하는 취미도, 영등포에서 전시회까지 열던 꽃꽂이 사범님의 자격증도 이제는 다 옛날얘기가 됐습니다.


저는 친조부모님 손에 자랐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오빠. 우리 여섯 가족은 한집에 살았습니다. 재잘대던 아가들은 조부모님의 시간을 먹고 쑥쑥 자랐지만, 그만큼 굽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몸은 점차 약해졌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그로부터 13년을 더 사셨습니다. 엄마는 ‘우리 아가들을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생의 끝까지 그들을 돌봤습니다. 엄마는 ‘이런 시대에 참 보기 드문 효부’ 소리를 들으며 25년을 살았지요.


장성한 아이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보겠다고 서울로 떠날 때, 엄마에게는 부랴부랴 챙겨서 학교를 보낼 사람도, 아침저녁 식사를 챙길 사람도 없어졌습니다. 동네에서 나고 자란 아버지가 친구들과 놀러 나가면, 도통 놀 줄을 모르는 엄마는 멍한 사람이 됐습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자꾸 마음만 아팠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꼬박꼬박 가던 교회도 가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누구보다 자기 일을 사랑해서, 제가 롤모델로 삼았던 열정 가득한 우리 엄마였는데, 새로 들어오는 일도 자신이 없다고 거절하곤 하셨지요. 이제 엄마 스스로가 약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엄마를 돌봅니다. 돌본다고 말하기도 참 부끄럽습니다. 그저 매일같이 전화를 하고, 한 달에 두어 번 찾아가 마스크 팩을 붙여주고, 생일상을 차려주러 갑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마치 예정된 순서처럼. 감사하고 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돌봄은 그렇게 이어졌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챙기고, 자식이 부모님을 챙기는 일은 선하고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엄마의 쉰여덟 번째 생일이 다가올 때, 가지고 싶은 선물 없냐고, 여행을 가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엄마를 채근했습니다. 매일 같은 전화 통화에 매번 모르겠다는 말이 돌아오던 어느 날, 저는 돌봄의 이면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돌봄은 나를 돌볼 시간을 꺼내서 남을 챙겨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30년 가까운 돌봄의 시간 동안, 엄마는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엄마는 너무 오랜 시간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왔고, 이제는 박향신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돌봄이 가지고 온 긴 그림자 속에,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진 아주 약한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언뜻 제 미래를 보았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하던가요, 저도 누군가를 챙기고 있으면 마음이 놓이고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엄마, 남자친구, 친구, 그것도 아니면 직장 동료. 누군가에게 주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그들을 챙기지 않으면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반대로, 그들이 나를 챙겨주지 않으면 마음이 궁해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나에게 기대면 될 일인데, 자꾸 다른 사람을 챙긴다는 핑계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나를 보았습니다.


당연한 사랑인 줄 알았던 돌봄이 사실은 나 자신을 잊게 만드는 일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길고 긴 돌봄은 때론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엄마와 제 자신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연습을 시작하려 합니다. 나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하고, 엄마가 엄마 자신을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도록. 그래야 우리의 사랑이 더 오래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진짜 어른이 되는 일은, 나를 잃지 않도록 잘 가꾸고 버티는 일 같습니다.



이 글은 '2025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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