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GRV | 김인애
함께 살아가는 삶, 그 안에 담긴 진짜 돌봄
김인애 (MGRV)
내면과 외면 모두 단단하고 건강한 삶을 추구합니다.
나는 열 살 차이가 나는 발달 장애를 가진 남동생이 있다. 처음 동생을 만난 순간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동생의 통통한 볼살과 가득 찬 머리숱은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우리 가족에게 온 그날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아이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동생에게 매일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놀이터에서 놀다 집에 오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동생을 달래어 집으로 데려오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갈 때도 동생을 업고 함께 가곤 했다. 그 모든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동생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부모님이 동생의 교육 문제로 다투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동생은 여전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였고, 내가 지킬 수 있는 소중한 가족이었다. 나는 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는 나와 동생 사이에 또 다른 여동생이 있다. 사춘기 시절, 둘째 여동생은 종종 엇나가기도 했지만, 막내 동생의 일이라면 언제든 두 손 두 발 벗고 나섰다. 동생의 자전거를 훔쳐 가거나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으면, 우리는 함께 힘을 합쳐 동생을 지켰다. 나는 망을 보고 있다가 어른들이 다가오면 재빨리 상황을 정리하곤 했다. 어른들은 모범생인 내 말을 잘 믿어주었으니,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삼총사였다.
삼총사의 대장이었던 나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바로 내가 결혼을 준비할 때였다. 나는 연애를 하면서도 동생에 대해 단 한 번도 숨긴 적이 없었고, 다행히 지금의 남편도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가장 걱정이 많았던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발달장애는 유전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하지만, 현재의 과학으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래서 가족 중에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결혼이 어려워지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았고, 엄마는 그 점을 많이 걱정하셨던 것 같다. 상견례를 마치고 가족끼리 여행을 갔을 때, 엄마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셨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조용히 엄마께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자신이 더 고맙다고, 막내 덕분에 내가 이렇게 따뜻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었고, 우리 부모님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고. 또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직업 덕분에 막내 동생을 더 이해할 수 있고, 앞으로 평생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의 진심 어린 말에 엄마의 걱정도 조금은 덜어진 듯했고 아빠는 사위 대신 큰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신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찡해진다. 가족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돌보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함께 하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런 환경 덕분이었을까, 학창 시절 내 짝은 항상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을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저 내 친구였고, 언니였을 뿐이다. 함께 장난치고, 때로는 다투고 사과하며 평범한 우정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의 부모님은 졸업식마다 우리 엄마를 붙잡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엄마는 늘 “서로 친구인걸요.” 라고 말하곤 하셨다. 그 말이 내게는 참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동생은 성인이 되었고 스스로 돈을 벌고 취미생활을 즐긴다. 오늘도 동생은 시 대표로 장애인 체육대회에 참가해 메달을 땄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동생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고, 덕분에 내 하루가 행복해지고 내일이 기대된다. 동생을 통해 나는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모든 이들에게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남들보다 다양성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동생이나 친구들을 돌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했던 시간들이 쌓였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돌봄이라는 단어에서 누군가는 약하고 누군가는 강해서 그들을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어느 순간에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돌봄을 받았고 그들 덕분에 성장했으며 우리는 그냥 함께 했을 뿐이다.
함께 하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누군가를 특별하게 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 나는 동생과 친구들과 함께하며 그 소중한 가치를 배웠다. 앞으로도 나는 그들과 함께,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배움과 성장을 이어가고 싶다.
이 글은 '2025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MGRV | 김인애
함께 살아가는 삶, 그 안에 담긴 진짜 돌봄
김인애 (MGRV)
내면과 외면 모두 단단하고 건강한 삶을 추구합니다.
나는 열 살 차이가 나는 발달 장애를 가진 남동생이 있다. 처음 동생을 만난 순간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동생의 통통한 볼살과 가득 찬 머리숱은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작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우리 가족에게 온 그날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아이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나는 동생에게 매일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놀이터에서 놀다 집에 오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동생을 달래어 집으로 데려오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갈 때도 동생을 업고 함께 가곤 했다. 그 모든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동생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부모님이 동생의 교육 문제로 다투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동생은 여전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였고, 내가 지킬 수 있는 소중한 가족이었다. 나는 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는 나와 동생 사이에 또 다른 여동생이 있다. 사춘기 시절, 둘째 여동생은 종종 엇나가기도 했지만, 막내 동생의 일이라면 언제든 두 손 두 발 벗고 나섰다. 동생의 자전거를 훔쳐 가거나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으면, 우리는 함께 힘을 합쳐 동생을 지켰다. 나는 망을 보고 있다가 어른들이 다가오면 재빨리 상황을 정리하곤 했다. 어른들은 모범생인 내 말을 잘 믿어주었으니,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삼총사였다.
삼총사의 대장이었던 나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바로 내가 결혼을 준비할 때였다. 나는 연애를 하면서도 동생에 대해 단 한 번도 숨긴 적이 없었고, 다행히 지금의 남편도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가장 걱정이 많았던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발달장애는 유전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하지만, 현재의 과학으로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그래서 가족 중에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결혼이 어려워지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종종 보았고, 엄마는 그 점을 많이 걱정하셨던 것 같다. 상견례를 마치고 가족끼리 여행을 갔을 때, 엄마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셨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조용히 엄마께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자신이 더 고맙다고, 막내 덕분에 내가 이렇게 따뜻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었고, 우리 부모님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라고. 또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직업 덕분에 막내 동생을 더 이해할 수 있고, 앞으로 평생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의 진심 어린 말에 엄마의 걱정도 조금은 덜어진 듯했고 아빠는 사위 대신 큰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신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마음이 찡해진다. 가족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돌보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함께 하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런 환경 덕분이었을까, 학창 시절 내 짝은 항상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을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저 내 친구였고, 언니였을 뿐이다. 함께 장난치고, 때로는 다투고 사과하며 평범한 우정을 나누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의 부모님은 졸업식마다 우리 엄마를 붙잡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엄마는 늘 “서로 친구인걸요.” 라고 말하곤 하셨다. 그 말이 내게는 참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동생은 성인이 되었고 스스로 돈을 벌고 취미생활을 즐긴다. 오늘도 동생은 시 대표로 장애인 체육대회에 참가해 메달을 땄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동생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고, 덕분에 내 하루가 행복해지고 내일이 기대된다. 동생을 통해 나는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모든 이들에게 더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남들보다 다양성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동생이나 친구들을 돌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했던 시간들이 쌓였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돌봄이라는 단어에서 누군가는 약하고 누군가는 강해서 그들을 지켜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어느 순간에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느낀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돌봄을 받았고 그들 덕분에 성장했으며 우리는 그냥 함께 했을 뿐이다.
함께 하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누군가를 특별하게 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 나는 동생과 친구들과 함께하며 그 소중한 가치를 배웠다. 앞으로도 나는 그들과 함께, 서로를 돌보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배움과 성장을 이어가고 싶다.
이 글은 '2025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