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GRV | 낙관
노란 돌멩이 손에 쥐고
낙관 (MGRV)
낙관입니다.
일터에서는 치열하게 일하고, 일터 밖에서는 글을 쓰고 사유합니다.
솔직한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비밀스레 가닿아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엄마가 노랗게 물들었다. 뽀얗던 엄마의 손이 은행잎만큼 노래진 날, 돌봄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그렇게나 노래질 수 있다는 게 무서웠다. 엄마의 황달 증세가 아주 심했다. 그렇게나 심각해질 때까지 아무도 병마가 그녀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심지어는 그녀 본인조차도. 몇 차례 큰 병원을 오가며 내려진 진단명은 췌장암이었다.
돌봄은 그런 것이다.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사람이 갑자기 노래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지난 여름 허리가 아프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그냥 넘겨버린 것을, 조용한 새벽에 울부짖으며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다. 준비하지 못하고 오는 것이다. 한창 직장에서 적응하고 있을 27살의 나이에 누군가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다는 사실을 준비하지 못한 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돌봄은 이렇게나 두렵고 갑작스럽게 찾아왔지만, 돌봄이 나에게 와 가르쳐 준 것은 그보다는 더 따뜻하고 값진 것이었다. 돌봄은 내게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살다 보면 감사함을 느끼기가 참 쉽지 않다. 감사한 것은 결국에는 익숙해진다. 깜빡하면 잊혀져 버린다. 그러다가 문득 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야 화들짝 놀라 다시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엄마의 투병 생활을 함께하며 이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가장 감사한 것은 잊혀지기도 쉽다는 것. 그리고 사라질 때쯤에 감사함을 느낀다면 충분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가장 위대하고 강하며 선하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존재. 나의 어머니. 그녀가 병마로 연약해지는 모습을 나의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처음에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이해해 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무엇을 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연약해지셨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나에게서 앗아가려는 세상을 저주했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도 점차 익숙해졌다. 어찌어찌 다 살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갈수록 흐려졌고, 삶은 도리어 감사함으로 충만해졌다.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한 몇 달의 인생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숨만 쉬어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뤄낸 모든 것, 나의 이름, 나의 정신, 나의 가치관, 나의 육신... 그런 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의 모든 것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평생 알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몰랐다.
나의 세상을 만들어 준 그녀에게 감사했다. 그런 그녀를 위해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나의 하루가 끝나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을 때, 엄마의 하루도 시작된다는 사실만으로 세상 모든 것에게 감사할 수 있는 나날이었다. 그렇게 은행잎보다도 노랗게 물든 엄마의 손을 잡고 가을을 무사히 보냈다. 눈이 오고 꽃이 피고, 눈 깜짝할 새 푸르른 여름이 왔다. 나를 평생 돌봐주었던 엄마를 돌보며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엄마는 육신의 아팠던 기억을 뒤로 한 채 먼 여행을 떠나셨다.
그 이후로 종종 엄마가 생각날 때면 친구가 나를 위로하고자 건네준 문장을 곱씹어 본다. ‘소중한 누군가의 부재는 가슴 위에 엄청 큰 바위가 내려앉는 것이다. 처음에는 숨도 못 쉴 만큼 괴롭고 힘들고 슬프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추워지고 더워지고. 반복하다 보면 차츰차츰 바위가 깎이고 깨진다. 그러다 보면 한 손에 들어오는 조약돌만큼 작아지는데, 그럼 우리는 그 조약돌을 호주머니에 넣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문득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잡히는 그 돌멩이에. 그 사람을 추억하고 또 슬퍼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사무치게 엄마가 그리운 날에는 바위가 나를 짓눌러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과 부대끼며 바쁘게 살다 보면 이 돌의 무게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나는 충분히 단단하기 때문에 이 돌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내 바위를 잠시 들어주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추워지고 더워져서 점점 바위가 깎일 것이다.
바위가 깎여 돌멩이가 되면 나는 이 돌멩이를 사는 내내 만지며 감사하고 또 감사할 것이다. 나의 세상을 만들어 준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를 상실의 늪에서 꺼내 준 따스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또 앞으로 나를 살아가게 할 나의 아버지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 너머에 있는 거대한 인류, 다시 돌아와 인간이라는 작고 연약한 존재를 생각하며... 나는 돌멩이를 만지며 충만한 사랑과 책임 의식을 동시에 느끼고, 이러한 멋진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삶에 감사하며, 감사할 대상이 있기에 더욱 소중해진 나의 인생을 최대한 가치 있게 사용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운명과 맞서 싸우고, 치열하게 나를 불태우며 주어진 삶을 소진해 나갈 것이다. 그녀를 돌보는 시간이 내게 가르쳐 준 ‘감사’라는 돌멩이를 손 안에 꼭 쥐고 말이다.
이 글은 '2025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MGRV | 낙관
노란 돌멩이 손에 쥐고
낙관 (MGRV)
낙관입니다.
일터에서는 치열하게 일하고, 일터 밖에서는 글을 쓰고 사유합니다.
솔직한 제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비밀스레 가닿아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엄마가 노랗게 물들었다. 뽀얗던 엄마의 손이 은행잎만큼 노래진 날, 돌봄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그렇게나 노래질 수 있다는 게 무서웠다. 엄마의 황달 증세가 아주 심했다. 그렇게나 심각해질 때까지 아무도 병마가 그녀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심지어는 그녀 본인조차도. 몇 차례 큰 병원을 오가며 내려진 진단명은 췌장암이었다.
돌봄은 그런 것이다.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사람이 갑자기 노래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지난 여름 허리가 아프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그냥 넘겨버린 것을, 조용한 새벽에 울부짖으며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다. 준비하지 못하고 오는 것이다. 한창 직장에서 적응하고 있을 27살의 나이에 누군가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다는 사실을 준비하지 못한 채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돌봄은 이렇게나 두렵고 갑작스럽게 찾아왔지만, 돌봄이 나에게 와 가르쳐 준 것은 그보다는 더 따뜻하고 값진 것이었다. 돌봄은 내게 감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살다 보면 감사함을 느끼기가 참 쉽지 않다. 감사한 것은 결국에는 익숙해진다. 깜빡하면 잊혀져 버린다. 그러다가 문득 곁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을 때야 화들짝 놀라 다시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엄마의 투병 생활을 함께하며 이 사실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가장 감사한 것은 잊혀지기도 쉽다는 것. 그리고 사라질 때쯤에 감사함을 느낀다면 충분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가장 위대하고 강하며 선하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존재. 나의 어머니. 그녀가 병마로 연약해지는 모습을 나의 두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처음에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이해해 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무엇을 해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고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연약해지셨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나에게서 앗아가려는 세상을 저주했다.
하지만 내가 처한 상황도 점차 익숙해졌다. 어찌어찌 다 살아진다는 어른들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갈수록 흐려졌고, 삶은 도리어 감사함으로 충만해졌다.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한 몇 달의 인생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숨만 쉬어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뤄낸 모든 것, 나의 이름, 나의 정신, 나의 가치관, 나의 육신... 그런 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의 모든 것은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평생 알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몰랐다.
나의 세상을 만들어 준 그녀에게 감사했다. 그런 그녀를 위해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나의 하루가 끝나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었을 때, 엄마의 하루도 시작된다는 사실만으로 세상 모든 것에게 감사할 수 있는 나날이었다. 그렇게 은행잎보다도 노랗게 물든 엄마의 손을 잡고 가을을 무사히 보냈다. 눈이 오고 꽃이 피고, 눈 깜짝할 새 푸르른 여름이 왔다. 나를 평생 돌봐주었던 엄마를 돌보며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엄마는 육신의 아팠던 기억을 뒤로 한 채 먼 여행을 떠나셨다.
그 이후로 종종 엄마가 생각날 때면 친구가 나를 위로하고자 건네준 문장을 곱씹어 본다. ‘소중한 누군가의 부재는 가슴 위에 엄청 큰 바위가 내려앉는 것이다. 처음에는 숨도 못 쉴 만큼 괴롭고 힘들고 슬프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추워지고 더워지고. 반복하다 보면 차츰차츰 바위가 깎이고 깨진다. 그러다 보면 한 손에 들어오는 조약돌만큼 작아지는데, 그럼 우리는 그 조약돌을 호주머니에 넣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문득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잡히는 그 돌멩이에. 그 사람을 추억하고 또 슬퍼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사무치게 엄마가 그리운 날에는 바위가 나를 짓눌러 고통스럽게 만들 것이다. 반대로 사람들과 부대끼며 바쁘게 살다 보면 이 돌의 무게를 완전히 잊어버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나는 충분히 단단하기 때문에 이 돌쯤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내 바위를 잠시 들어주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추워지고 더워져서 점점 바위가 깎일 것이다.
바위가 깎여 돌멩이가 되면 나는 이 돌멩이를 사는 내내 만지며 감사하고 또 감사할 것이다. 나의 세상을 만들어 준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를 상실의 늪에서 꺼내 준 따스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또 앞으로 나를 살아가게 할 나의 아버지와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 너머에 있는 거대한 인류, 다시 돌아와 인간이라는 작고 연약한 존재를 생각하며... 나는 돌멩이를 만지며 충만한 사랑과 책임 의식을 동시에 느끼고, 이러한 멋진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삶에 감사하며, 감사할 대상이 있기에 더욱 소중해진 나의 인생을 최대한 가치 있게 사용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운명과 맞서 싸우고, 치열하게 나를 불태우며 주어진 삶을 소진해 나갈 것이다. 그녀를 돌보는 시간이 내게 가르쳐 준 ‘감사’라는 돌멩이를 손 안에 꼭 쥐고 말이다.
이 글은 '2025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