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빠르게 지나간 한해 <2023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2023-12-02

윤강 | 누구나데이터

윤강 | 누구나데이터

빠르게 지나간 한 해






윤강 (누구나데이터)

누구나데이터 캠페이너스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리모트워크를 하며 은평-부산-제주를 왔다갔다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요가와 수영을 좋아합니다.






올해의 마음: 단순함

올해는 삶이 심플하고 단순해졌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침에 눈 뜨면 6시까지 집중해서 일하고 6시 땡하면 요가복을 챙겨서 따릉이 타고 요가원으로 간다. 요가를 마치면 가볍게 산책하고 집에와서 유튜브를 보며 누워있다가 잠든다. 동네 친구들이 술마시자는 카톡이 오면 ‘나갈게'하고 30분 만에 동네술집에 모여서 새벽까지 마시고 가끔 조카들이 보고 싶어지면 부산에 갔다 온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유독 빨리지나간 것 같다. 나이 먹으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들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20대 때는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하루하루가 불안했었는데, 몇 년 사이에 일도 관계도 많이 정리되고 명료해졌다. 


누구나데이터에 입사하기 전에는 나는 주로 서울시 ‘중간지원조직'들에서 일했다. 괜찮은 직장이었지만 항상 미래가 불안하고 만족스럽지 않았다. 앞으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대단한 전문성을 쌓아야 할 것 같고 (코딩, 대학원 같은 것에 기웃기웃) 퇴근하고 돌아와 잠들려고 누우면 괜히 생각이 많아지는 날들이 많았다. 


생각만으로 ‘괜히' 불안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첫 번째 퇴사하고는 무직 기간이 길어져서 우울증에도 걸리고, 이직을 하고 초창기에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느라 원인 모를 불안장애가 찾아와 불안이 잦아들 때까지 몇 날 몇일을 눈뜨면 하염없이 걷기도 했었다. 그런데 누구나데이터에 입사하고 나서는 윙윙거리며 항상 머릿속에 돌아가던 불안이 사라졌고, 직업적인 불안이 없는 생활이 얼마나 정신 건강에 좋은지 체감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에 자율근무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그러면 몇몇은 부럽다고 말하며 ‘재택하면 쉬는 날이잖아'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회사는 그렇진 않다. 업무시간 동안에는 모두 초집중해서 일을 한다. 언젠가 같이 일하는 성주님이 "구성원들이 단 1%도 내가 하는 말의 의도를 나쁜 방식으로 오해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죽이 잘 맞고, 만나진 않지만 업무메신저 상에서 의견 교환이 활발하고, 의사결정도 그때그때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한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업무들을 잘 해내기 위해서 업무시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하는 게 피로할 때도 있긴 하지만, 일에 집중하는 생활이 보람차고 만족스럽다. 꼭 해내고 싶었던 프로젝트들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어서 뿌듯한 한 해였고.



올해의 잘한 일: 비영리 주니어 스터디클럽

프로젝트의 시작은 슬랙메세지 하나였다. “비영리/소셜/사회운동 등등 영역에 IT 기술자들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공부도 할 겸 '노코드, 업무자동화, 마케팅 도구들' 중심으로 공부 모임을 모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모집하면 인기 있을까요?”


그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동료들의 대박예감에 힘을 얻어 오오카(오렌지레터 오픈 카톡방)에 <주니어 IT 스터디 사전 알림 신청> 폼을 간단하게 만들어서 올렸다. 그때부터 슬랙 메세지가 쉴 새 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틀 만에 84명이 스터디 사전알림을 등록했다. “늘 혼자만의 고민과 좌절의 연속이었는데 비영리 주니어분들과 함께하는 스터디라니, 업무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정말 기대됩니다!”


그날 이후로 일하는 내내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설렘의 울렁거림. 누구나데이터에서 일하며 습득한 IT지식을 이번 기회에 탈탈 털어서 오프라인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면 너무 좋겠다라는 마음이 울렁. 한쪽에서는 걱정의 울렁거림. 한번도 안해본 주제로 교육+실습+네트워크가 결합된 오프라인 교육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망하면 어떡하지. 이걸 내가 왜 한다고 했지. 


결론부터 말하면, 성황리에 스터디는 진행됐고, 올해의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비영리 주니어 스터디를 제안하고 해낸 것이다. 30명이 넘는 주니어분들과 격주로 헤그에서 오프라인으로 모여 노코드-업무자동화를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어려워할 거란 걱정과 달리 주니어 분들은 몹시 흥미로워했고, 실습도 척척 해냈고, 본인 업무에도 능숙하게 배운 것들을 적용해냈다. 


물론 과정이 쉽진 않았다. 나의 메인 업무는 ‘캠페이너스' 업무인데, 메인 업무는 업무대로 하면서 강의자료를 준비하는 게 쉽진 않았다. 선생님이 되니까 학생들보다 한 20배는 더 시간을 써서 공부를 해야하더라. 스터디가 진행되는 두 달 동안은 항상 새벽까지 주말까지 PPT를 만들었다. 때마침 제주도 휴가도 잡혀있었는데, ‘놀면 뭐하나 스터디 클럽을 잘 해내야 마음이 편하지’ 노트북을 열고 실습자료를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스터디 마지막 날 주니어 분들이 ‘스터디 클럽에서 어떤 걸 배웠고 어땠는지' 발표를 돌아가면서 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코가 찡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강의자료 만들고, 강의장 세팅하고, 저녁 식사 주문하고, 자리 배치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에 울고 웃던 시간들이여. 



올해의 결심: 제주도

갑자기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작년에 오랜 파트너와 동거생활을 청산하고 거의 10년 만에 다시 1인 가구 생활을 시작했다. 다시 혼자 살게 되기 전에는 1인 가구 생활이 적적하고 외로울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웬걸, 1인 가구의 생활이 퍽 마음에 들었다. 옆 사람 신경 안 써도 되고, 나만 좋으면 되는 방식으로 지낼 수 있고, 사소한 집안 일로 싸울 일도 없고. 같이 살 때는 혼자 살면 얼마나 자유롭다고 그러지, 나는 같이 사는게 훨씬 좋고 지금도 충분히 자유롭고 편한데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헤어진 파트너와도 연락을 하며 지내는데 둘 다 혼자살게되니 편하고 좋다고 맞장구를 친다. ‘너도 그래?’ 하면서. 


혼자 살게 되니 원래도 자주 떠나던 리모트 근무를 올해는 더 자주 했다. 쑥쑥 크는 조카들이 보고 싶어지면 부산에 가서 며칠 지내며 일하다 오고, 강릉 워케이션 프로그램이 좋아보여서 동해 바다를 보며 일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하며 일하기도 하고. 집에서 일하는 게 지겨워지면 캐리어 하나만 끌고 자주 떠났다.


그렇게 캐리어를 끌고 리모트워크를 하다 보니 올해 큰 결심을 하게 됐다. 내년에는 서울을 떠나 제주도에 살아보려고 계획 중이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고, 어렴풋이 ‘마흔 전에는 서울을 뜬다’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올해 초에 제주도가 마음에 쏙 들어와 버렸다.


올해만 제주도에 이래저래 다섯 번 정도 내려간 것 같다. 내려가기 전에는 ‘그래도 제주에 사는 건 무리인가’ 싶다가도, 제주도에 내려가서 지낼 때마다 제주 사랑이 깊어졌다. 드라마도 제주 배경으로 촬영된 드라마를 찾아보고, 어디가서 제주 출신 분들을 만나면 동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갑다. 지금 사는 서울 은평구 불광천도 너무 좋아하지만, 제주도의 파도 소리와 노을과 바람과 하늘은 생각만 해도 위로가 된달까. 제주도에 가면 ‘오피스 제주’ 같은 공유오피스에서 일하면서 저녁엔 근처 요가원에서 요가를 하는데, 선생님이 ‘다리를 바다 쪽으로 뻗으세요', ‘시선은 한라산 쪽을 보세요'라고 티칭하는 곳이 제주더라. 


제주살이도 쉽지만은 않겠지만 일단은 떠나보려고 한다. 리모트 근무를 자주 하다 보니까 집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집이 조금 거추장스럽다고 할까. 제주에 내려가서 지내게 되면 짐도 확 줄여버리고 미니멀하게 만들어서 당분간은 지내보려고 하고 있다. 언젠가 친구가 ‘서울 사람들은 자동차처럼 걸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끼어들 틈도 없이 앞만 보고 걷기보다는, 깊은 바다와 한라산이 펼쳐진 제주에서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생활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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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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