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 사단법인 기후솔루션
우리는 삐걱거리며 나아간다.
하지현 (사단법인 기후솔루션)
지구를 위해 말과 글, 법을 쓰는
기후솔루션 하지현 입니다.
기후변화에 남은 시간도 촉박하지만
제 성격은 더욱 성급합니다.
2021년 겨울, 처음 헤이그라운드에 왔을 때 많은 것들이 환상적이었다. 성수동 공유오피스라는 말조차 멋진데, 천장이 높은 4층 라운지 유리창에서는 그림처럼 햇빛이 쏟아졌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삼삼오오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반짝였다. 가장 재미있는 대화 주제가 사내 정치, 부동산, 자녀입시인 안전한 회사에서 몇 년을 보내고 와서 새로운 공기가 상쾌했다. 그러나 성수동 판타지는 잠시, 곧 코로나 재확산으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또 그즈음 많은 사람들이 우리 단체에서 퇴사하는 일도 있었다. ‘체계와 안정을 떠나온 대가를 곧장 치르네, 여기 있는 게 맞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제는 그 기억도 아득할 만큼, 이후로도 공항과 기차역처럼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졌다. 내 자리는 5층이었다, 6층이었다, 4층이었다, 지금은 다시 5층이 되었다. 기후솔루션 사무실은 몇 번이나 벽을 허물었다. 많은 변화 동안, 옥상이며, 7층이며, 헤이그라운드 곳곳으로 가끔 도망치며 숨을 쉬었다.
올해로 기후솔루션 2년 차가 되어, 2023년을 보냈다. 이제 우리 조직에서 “일”을 조금 알 것도 같다. 옆 건물 로켓배송처럼, 우리 조직은 국내 기후캠페인이라는 불모지에 로켓처럼 튀어 나가서 변화를 만들어 낸다. 탄소를 배출하는 쪽은 막대한 자본을 무기로 경험, 전문성, 네트워크를 가진 천만대군이 버티고 있다. 반면 나와 많은 동료들은 기후, 시민사회가 처음인 데다, 자원이라고는 기껏해야 열두 척 배에 비유할 만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좋은 전략을 가지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 부딪쳐야, 세상이 바뀔까 말까 한다. 그러자면 고민을 최소화해서 빠르게 일을 실행하는 한편, 틈틈이 공부해서 지식과 역량도 키워야 한다. 심지어는 다양한 구성원, 존재들을 놓치지 않고 정의로운 수단, 방법으로도 가야 한다. ‘빠르게, 그러나 올바르게’ 가느라 견해가 갈릴 때도 많다. 우리는 자주 삐걱대면서 나아간다.
우리 조직은 완벽하지가 않다. 그래도 여기서 함께 도전하고 고민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든든하다. 기후솔루션보다 세상에 더 정의로운 조직, 더 똑똑한 조직, 더 풍부한 전통과 자원을 가진 조직들이 수없이 많다. 비교하자면 우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 조직에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 10년 전 『파우스트』를 읽을 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는 문장을 처음 보았다. 지향도, 방황도 끝마쳐버린 어른들을 사회에서 수없이 보고서야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조직에는 기후 간판 아래 MBTI처럼 지향과 방황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떤 순간에 멈추기보다는, 부족한 것을 고치려고 하고, 굳이 새롭게 도전하고 나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고되고 즐겁게, 계속해서 더 나은 지점으로 향하고 있을 것 같다.
올해는 그 동료들을 믿으며 함께 일하고 또 도움을 구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일터에서 배워온 것은 내가 잘해서 내가 성과를 내는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작년에 처음 동료들로부터 기후며, 언론, 시민사회를 배우고 그들을 믿고 함께 일하는 연습을 했다. 올해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돈이나 사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동료들로부터 배우고 있다. 믿음직한 동료들에게 곧장 물어보고 고민을 해소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천운이다. 올해는 새로운 동료들에게 내가 먼저 보고 경험했던 것을 말과 글로 전달하는 역할도 맡았는데, 예상보다 무척 어려웠다. 아무리 설명해도, 동료들이 의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지는, 우리의 노력 바깥의 우연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모든 노력과 우연 끝에, 그들이 처음 경험에서 동기부여를 얻고 또다른 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 뿌듯한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우리가 함께 나아갈 좋은 목표들을 계속해서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돌고돌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대사처럼, 우리의 삶 그 안에 일이 있으니까, 삶이 더 알고 싶어졌다. 일과 삶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보통의 우리는 주말을 빼면 많은 시간 일을 하면서 보내고, 그게 나의 기분과 컨디션을 좌우한다. 그래서 일은 아무래도 월급만 나오면 좋고, 일 바깥에서 모든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일과 삶은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처럼 어느 정도 섞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 일이 삶이 될 수는 없고, 일의 기쁨이 모든 삶의 기쁨이 될 수는 없다. 일 바깥에서도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외국에서 뜻밖에 새벽 별을 보았던 일처럼 크고 작은 행복을 잘 찾고 싶다. 일이 종종 삶을 압도하거나, 초조하게 만들지라도, 사소한 경험에서 나 자신과 삶을 알아가는 기쁨을 앞으로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막연히 기다리던 더 좋은 날들이란
영영 안 올지도 몰라요
차창에 꾸벅이는 그댈 한참 바라봐요 난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그대 기쁨은 무언가요
『통근버스』, 9(9와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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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하지현 | 사단법인 기후솔루션
우리는 삐걱거리며 나아간다.
하지현 (사단법인 기후솔루션)
지구를 위해 말과 글, 법을 쓰는
기후솔루션 하지현 입니다.
기후변화에 남은 시간도 촉박하지만
제 성격은 더욱 성급합니다.
2021년 겨울, 처음 헤이그라운드에 왔을 때 많은 것들이 환상적이었다. 성수동 공유오피스라는 말조차 멋진데, 천장이 높은 4층 라운지 유리창에서는 그림처럼 햇빛이 쏟아졌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삼삼오오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눈이 반짝였다. 가장 재미있는 대화 주제가 사내 정치, 부동산, 자녀입시인 안전한 회사에서 몇 년을 보내고 와서 새로운 공기가 상쾌했다. 그러나 성수동 판타지는 잠시, 곧 코로나 재확산으로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또 그즈음 많은 사람들이 우리 단체에서 퇴사하는 일도 있었다. ‘체계와 안정을 떠나온 대가를 곧장 치르네, 여기 있는 게 맞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제는 그 기억도 아득할 만큼, 이후로도 공항과 기차역처럼 사무실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졌다. 내 자리는 5층이었다, 6층이었다, 4층이었다, 지금은 다시 5층이 되었다. 기후솔루션 사무실은 몇 번이나 벽을 허물었다. 많은 변화 동안, 옥상이며, 7층이며, 헤이그라운드 곳곳으로 가끔 도망치며 숨을 쉬었다.
올해로 기후솔루션 2년 차가 되어, 2023년을 보냈다. 이제 우리 조직에서 “일”을 조금 알 것도 같다. 옆 건물 로켓배송처럼, 우리 조직은 국내 기후캠페인이라는 불모지에 로켓처럼 튀어 나가서 변화를 만들어 낸다. 탄소를 배출하는 쪽은 막대한 자본을 무기로 경험, 전문성, 네트워크를 가진 천만대군이 버티고 있다. 반면 나와 많은 동료들은 기후, 시민사회가 처음인 데다, 자원이라고는 기껏해야 열두 척 배에 비유할 만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좋은 전략을 가지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 부딪쳐야, 세상이 바뀔까 말까 한다. 그러자면 고민을 최소화해서 빠르게 일을 실행하는 한편, 틈틈이 공부해서 지식과 역량도 키워야 한다. 심지어는 다양한 구성원, 존재들을 놓치지 않고 정의로운 수단, 방법으로도 가야 한다. ‘빠르게, 그러나 올바르게’ 가느라 견해가 갈릴 때도 많다. 우리는 자주 삐걱대면서 나아간다.
우리 조직은 완벽하지가 않다. 그래도 여기서 함께 도전하고 고민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든든하다. 기후솔루션보다 세상에 더 정의로운 조직, 더 똑똑한 조직, 더 풍부한 전통과 자원을 가진 조직들이 수없이 많다. 비교하자면 우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 조직에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 10년 전 『파우스트』를 읽을 때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는 문장을 처음 보았다. 지향도, 방황도 끝마쳐버린 어른들을 사회에서 수없이 보고서야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조직에는 기후 간판 아래 MBTI처럼 지향과 방황의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다. 어떤 순간에 멈추기보다는, 부족한 것을 고치려고 하고, 굳이 새롭게 도전하고 나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고되고 즐겁게, 계속해서 더 나은 지점으로 향하고 있을 것 같다.
올해는 그 동료들을 믿으며 함께 일하고 또 도움을 구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일터에서 배워온 것은 내가 잘해서 내가 성과를 내는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작년에 처음 동료들로부터 기후며, 언론, 시민사회를 배우고 그들을 믿고 함께 일하는 연습을 했다. 올해도,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돈이나 사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동료들로부터 배우고 있다. 믿음직한 동료들에게 곧장 물어보고 고민을 해소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천운이다. 올해는 새로운 동료들에게 내가 먼저 보고 경험했던 것을 말과 글로 전달하는 역할도 맡았는데, 예상보다 무척 어려웠다. 아무리 설명해도, 동료들이 의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을지는, 우리의 노력 바깥의 우연적인 요소도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모든 노력과 우연 끝에, 그들이 처음 경험에서 동기부여를 얻고 또다른 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꽤 뿌듯한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우리가 함께 나아갈 좋은 목표들을 계속해서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돌고돌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대사처럼, 우리의 삶 그 안에 일이 있으니까, 삶이 더 알고 싶어졌다. 일과 삶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보통의 우리는 주말을 빼면 많은 시간 일을 하면서 보내고, 그게 나의 기분과 컨디션을 좌우한다. 그래서 일은 아무래도 월급만 나오면 좋고, 일 바깥에서 모든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일과 삶은 강물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처럼 어느 정도 섞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 일이 삶이 될 수는 없고, 일의 기쁨이 모든 삶의 기쁨이 될 수는 없다. 일 바깥에서도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외국에서 뜻밖에 새벽 별을 보았던 일처럼 크고 작은 행복을 잘 찾고 싶다. 일이 종종 삶을 압도하거나, 초조하게 만들지라도, 사소한 경험에서 나 자신과 삶을 알아가는 기쁨을 앞으로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막연히 기다리던 더 좋은 날들이란
영영 안 올지도 몰라요
차창에 꾸벅이는 그댈 한참 바라봐요 난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그대 기쁨은 무언가요
『통근버스』, 9(9와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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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