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골드베르크까지 N걸음 <2023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페르난도 | 에그번에듀케이션

골드베르크까지 N걸음





페르난도 (에그번에듀케이션)

서로의 언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세상 모든 국제 문제의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는 믿음으로 

7년째 언어교육을 위한 에듀테크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 

띠리링, 구글 지메일의 보관함에 또 하나의 스타트업 이야기가 배달 왔다. 

스타트업 혹한기라고 하던데, 투자를 받았나 보다. 

그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지인이 두 달 동안 고생 끝에 후속 투자를 받았다고 하던데 집에 돌아가는 길에 속이 쓰렸다. 내가 그들과 어느 순간부터 같은 레일에서 있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연료를 태우면서 날아가는 것을 느껴본 지가 언제인 듯 싶다. 

근근이 매출이라는 숨을 쉬며 살아있는 모두가 함께 만든 이 작은 회사, 이 작은 별과 저 멀리 성운처럼 빛나는 회사와의 괴리가 먹먹했다. 

바로 전 메일에 이어 갑자기 최근 몇 달간 재택을 하며 지내던, 7여 년간 일했던 초기 멤버에게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목돈이 필요해 그만두려고 하니 퇴직금을 정산해달라. 


#1-1 

고민의 총량이 개인의 허용을 넘을 때 보통 외부에서 치료법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여러 방안으로 마음을 안정시켜 보려고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노이즈로 변해 마음만을 복잡게 했다. 특히 가사가 있는 음악들이. 

치료제가 필요해 가사 없는 음악들을 찾아보았다. 

한 피아노곡을 듣는 순간 마음이 안정이 편해져 찾아봤다. 곡이 무척 길었다, 40분이 넘는 곡. 

제목을 확인하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라고 하였다. 

연주자는 '글렌 굴드'라는 미국인 피아니스트. 

뭔가 그 처럼 연주할 수 있으면 힘든 마음을 어느 때곤 스스로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피아노를 구매했다. 


#2 

회사는 고객과 사회의 문제를 풀기 위해 존재한다. 그로 인해 혜택을 보는 고객만이 우리의 몰입과 열정이 향하는 곳 이어야 한다. 

구성원의 방향성이 고객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할 때, 그 개인이 속한 조직은 상처를 입는다. 

그 조직이 스타트업이라고 하는 취약한 기반의 단체라면, 그 상처는 더욱더 깊다. 

초기 멤버가 개인의 욕심을 표출한 이후, 사건의 파문이 회사 전체로 퍼지게 된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누구는 그처럼 개인의 욕심을 우선시하고, 누구는 그런 모습에 실망해서 떠난다고 했다. 

심과 체에 하루가 다르게 상처가 늘어났지만, 차분하게 할 일을 했다. 

욕심을 차리는 사람에게 원하는 것들을 안겨주고 실망해 퇴사하는 사람을 놓아주고. 건강한 조직으로 가기 위해 수술을 시작했다. 


#2-1 

바흐의 곡은 '다성부’라는, 마치 여러 사람이 한 번에 노래하는 듯한 형식으로 되어있다. 오른손과 왼손이 각각 다른 멜로디를 노래할 때도 있고, 왼손은 2명이 노래하고 오른손이 한 명을 노래할 때가 있는가 하면 같이 합창하는 순간들도 있다.

유튜브에서 연주하는 피아노의 대가들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 호기롭게 도전하였지만 현실은 한 마디 한 마디 손가락 운동 같은 테크닉 연습을 하는 것이 나의 피아노 생활의 전부가 되었다. 

주샤오메이이라는 중국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그 당시 문화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피난을 와 접시닦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에 피아노를 쳤다고 한다. 그분에게 전부 완벽한 바흐를 치는 것을 단 하나의 목표로 허름한 방에서 연주를 해왔다고 했다. 하루는 본인의 악보를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잡는 바람에 실수로 악보가 젖은 일이 있었다. 그분은 '내 바흐가 물에 젖었다'며 품에 안고, 악보가 마를 때까지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조국을 떠나야만 할 때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그렇다, 분명히 이 곡을 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친 곡이니까. 하지만 곡의 완성과 나의 현재와의 간극이 한없이 길다. 


#3 

회사 운영 인력이 줄어서 많은 부분을 AI 툴로 대체 하게 되었다. 

콘텐츠의 제작 발행과 마케팅 아이디어, 테스트.. 하나하나 도입하다 보니 많은 일들을 AI가 잠식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서 떠난 사람들과 남아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장마철 마당에 내어놓은 양동이의 물처럼 가득 차기 시작했다. 

AI는 스티브 잡스처럼 전반적으로 조언을 하기도 하고, 우리 제품의 개선 방향을 매켄지 컨설턴트처럼 알린다. 

AI가 잡스도 되고, 컨설턴트도 되고 마케터도 되고 디자이너도 된다면, 나와 같이 함께 일하는 우리들의 고객의 문제를 가장 잘 푸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3-1 

피아노에 빠져들면서 여러 피아니스트의 곡들을 듣다 보니, 각각의 개성의 아름다움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걷던 어느 날, 완성도가 상당하나 연주자의 개성을 가늠할 수 없는 곡을 듣다가 유튜브를 확인했다. 

은색의 몸통, 두 팔 대략 100여 개의 손가락을 가진 기괴한 물체가 리듬에 맞춰서 건반을 치고 있었다. 그 물체에서는 어떠한 음악성이라든지, 목표의 과정에 대한 집착이라든지, 나타내고자 하는 무언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개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 때문인지 모르지만, 완벽한 리듬으로 연주가 되는 피아노의 소리가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왜 거부감이 드는지 모르겠지만 기계화라는 것이 꼭 완벽하고 좋은 것을 뜻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블랙 프라이데이와 연말을 앞두고, 구글에서 매출에 대한 지급이 딜레이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아마도 우리 영문 사업명이 세무서의 실수로 오기가 된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어찌할 바를 몰라, 회사 사람들과 세무 담당자 등에 이야기했다. 

세무 담당자는 정정 신청에 대해 알았다고 하고, 콘텐츠 담당자는 유료 광고 대신 예정되었던 회사 콘텐츠를 책으로 출판하는 것을 서둘러서 하는 것으로 하자고 말했다. 

알겠고, 고맙다고 말하며 회사 밖으로 잠깐 나섰다. 

먹구름이 드리워져 흐리고 습했다. 바람이 살을 에어서 걸을 때마다 견딜만한 정도의 고통이 엄습했다. 

이것이 맞는가 싶어서 날씨를 확인했다. 내일은 맑다고 했다. 

내가 내일 행복한 날씨를 만약 누린다면 오늘이 고통스러워서일지도 모른다.


#4-1 

지겨운 손목 및 손가락 테크닉 연습을 견디다 보니 드디어 바흐의 첫 음악을 완성했다. ‘미뉴에트'라는 바흐의 입문 정도의 곡이었다. 전문가가 보기에는 서투르지만 나만의 감정과 노력이 담긴 첫 바흐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듣기에 좋았다. 

골드베르크를 연주하기까지는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다. 열 걸음을 더 가면 도달할까. 수천 걸음 걸어도 끝이 안 보이는 사막 같은 길을 내가 걷기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도랑에 자주 빠지는 서투른 나에 대한 원망만을 끊임없이 즉시하고, 한 곡의 완성에 대한 아름다움 같은 사소한 진보를 어느 순간부터 철저히 경시하였던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완벽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어느정도 망가진 모습이지만, 자아와 개성이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걸음을 걷는다는 것에 감사하자. 

내가 꿈꾸는 행복한 형태의 회사가 되기까지 아득히 멀어 보여도. 

골드베르크를 치는 나의 모습까지 얼마나 많은 길을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도. 

오늘도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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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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