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내가 나이게 하는 것들의 힘 <2023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쏘냐 | 안전가옥


내가 나이게 하는 것들의 힘





쏘냐 (안전가옥)

우리의 중간계 여정이 기쁨으로 가득 차기를!





[사람들이 떠나간다. 그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비밀스러운 세계도 다시 탄생시킬 수 없다. 그리고 매번 나는 이 돌아올 수 없는 것 때문에 다시 소리 지르고 싶어진다.]


예브게니 에프투셴코의 <별의 역사>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저는 올 한 해 저를 웃기고 울렸지만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가는 픽션 속 인물들이 떠오르더군요. 시간이 지나 무언가 잊히는 일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한 해의 끝자락에서 스스로가 지나온 열두 달의 시간을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마음한 켠을 멜랑콜리하게 만듭니다.


23년인 올 한 해도 제게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의 대세를 따라) 중세풍의 세상으로 타임 슬립해서 망국의 황녀로 2회차 반전 인생을 사는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없었습니다. 어제와 딱히 다를 것 없는 오늘을 마주하고, 힘겹게 무언가와 싸우다 보면 스스로에게 의문이 듭니다. ‘역시 나는 그냥... 이 우주의 별 볼일 없는 소모품인가?’ 


그리고 그때마다 저는 제 자신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난 뭘 좋아했지? 또 무엇을 얻으려 했지?’


제게 답은 항상 한 가지였습니다. 예전에도 지금에도 제가 좋아하는 것은 잘 만들어진 이야기, 모든 종류의 ‘픽션’이었어요. 세상의 모든 픽션은 제각각의 사랑을 변주해서 들려주곤 하죠. 저는 그 사랑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면서도, 동시에 연약한 아픔도 느낍니다. 그 감정은 언제나 그립고, 지겹죠. 정말이에요. 지겹고, 그립습니다. 하지만 기쁨과 슬픔처럼 제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죠.


그렇게 올 한 해도 많은 사랑 이야기들을 보았습니다(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입니다. 여러분! 올해 애니메이션이 드디어 완결 났으니 안 보신 분들은(이하 생략)). 비단 픽션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사랑은 독립적이고 완벽하고 마냥 아름다울 수가 없는 감정인 듯해요. 너도 너를 모르고, 나도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영문 모를 진창을 함께 구르는 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습니까(“그 사람이 웃어준다면 나는 수상쩍은 세일즈맨과 생수기 계약도 할 거고, 속아서 원양 어선에 타게 된다해도 상관없어!”). 인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아름답다 여기는 사랑을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지를 깨닫게 되죠.


저는 사랑에 면역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올 한 해도 저를 울리고 웃겼던 픽션 속 인물들의 사랑을 보면서 호흡 곤란이 올 정도로 웃어 보기도 하고, 목이 쉬고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울어도 보고... 많은 희로애락을 느꼈네요. 그 감정적인 고생을 하면서도, 다가오는 24년에도 이러한 사랑의 어리석음을 작가만의 아이덴티티로 치열하게 그려낸 이야기가 더 많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토록 집착하게 되는 온갖 종류의 픽션으로 저는 과연 무엇을 얻으려 했던 것인지, 생각해 보면 그것은 결국 ‘사람’ 이었다고, 올해의 끝자락에서 다시금 복기하게 되네요.


돌아보면 올해는 여러 인간상 중에서도 ‘사랑의 어리석음’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들을 많이 접한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나와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의 연대나 사랑을 통해 아름다운 인간 삶의 가치를 말하는 작품이 제 마음에 여운을 주었습니다. 노답 상황에서도 ‘너 역시 양지의 빛을 느낄 수 있어. 너는 그런 사람이야...’ 이런 이야기가 주는 사랑의 속삭임을 떠올리면 저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용기가 납니다.


그러니 저는 스스로가 모자란 인간일지라도, 다가오는 24년 역시 픽션 속 사랑이 주는 기합으로 파이팅 하고 싶습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본인이 소모품처럼 느껴질지라도, 그럼에도 계속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내가 나이게 하는 것들의 힘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싶습니다. 파멸에도 재기에도 용기는 필요하니까요. 눈물 나면서도 좋은 일이죠.


올 한 해 이세계 타임슬립 같은 드라마틱한 전개는 없었을지라도, 우리의 여정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마침내 이 모험에 <끝>을 새겨 넣을 순간을 맞이하겠지요. 그때 저는 픽션이 제게 준 용기를 통해 소중했던 사람들과 전력으로 사랑했던 순간으로, 제 삶의 페이지가 커다란 기쁨으로 가득 차 있기를 바랍니다. <별의 역사>가 이야기했듯이 떠나간 것들은 되돌릴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다시금 뒤돌아보며 떠나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를 기쁨으로 추억할 수는 있겠지요.


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처럼, 당신이 어떤 지경을 헤매었는지, 어떤 풍속을 보았고, 어떤 해안을 보았는지, 당신을 거친 분노로 대한 이들은 누구였고, 따뜻한 친절로 맞이한 이들은 누구였는지, 어떤 특정한 이야기가 왜 당신을 심려케 했는지, 왜 당신이 가슴을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는지.


다가오는 새해에는 어디선가 당신과 연이 닿아 그 소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분명히 당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고 싶어 할 거예요). 제게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져다주는 헤이그라운드의 안전가옥 멤버들에게도 감사해요. 덧붙여 안전가옥의 명품 배우 쿤! 결혼 축하합니다. 쿤에게 새롭게 펼쳐질 삶의 페이지가 쿤의 순수한 심성만큼 사랑으로 따뜻하길 바라요.


저는 올해의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하고, 내년에도 사람과 사랑 속에서 즐거운 저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좋아하는 것들로 자신의 페이지를 채우고, 얻고자 하는 것들도 시원하게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를 위해 항상 마음의 펜을 놓지 말아요, 우리. 


다가올 2024년도 파이팅입니다!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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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3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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