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클]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도전: 뉴욕에 헤이그라운드를 짓습니다.

2023-03-22

뉴욕에 헤이그라운드를 짓습니다

* 루트임팩트의 자매사이자 미국 뉴욕의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을 중심으로 임팩트 생태계를 조성하는 장선문 커뮤니타스 아메리카(Communitas America) 대표가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커뮤니티와 소외 그리고 공간

뉴욕의 빈부격차는 유난하다. 5개의 행정구역(borough)으로 나뉜 뉴욕 시는 미국 내 다른 지역보다 빈부격차가 크고 그로 인한 교육, 건강/보건, 환경 격차로 인한 사회 문제가 두드러지는 곳이다. 가장 화려한 도시면서도 가장 빈곤한 이면을 가진 곳. 멀리서 보면, 뉴욕을 구성하는 인구의 다양한 인종과 배경으로 인해 멜팅 팟(Melting Pot)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 어디보다 심한 격차와 구분(Segregation)의 도시인 것이 사실이다.


2018년 가을, 루트임팩트의 자매조직인 비영리 단체 “커뮤니타스 아메리카(Communitas America)”는 미국 뉴욕시에 자리를 잡았다. 가장 변화가 필요한 지역에 변화를 만드는 기업가(entrepreneur)를 중심으로 한 임팩트 창업 생태계를 짓겠다는 생각이었다. 브롱스나 할렘처럼 소외되거나 낙후된 지역의 기업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커뮤니타스 벤처스’ 1기는 지역경제를 만들기 위해 시작되었다. 본 프로그램은 일 년에 기수제로 두 번 진행되며, 2019년까지 세 기수, 약 스무 명이 거쳐갔다.  


그렇게 순풍만 불어오는가 싶었지만 2020년 2월 맨해튼에 코로나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팬데믹,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Black Lives Matter’ 운동 그리고 약탈이 연달아 일어나며 팬데믹으로 고요했던 거리는 폭동과 데모로 얼룩졌다. 뉴욕의 상점은 샤넬과 같은 명품숍이든 동네 수퍼든 구분할 것 없이 약탈이 난무했다. 약탈은 범죄행위이지만, 미국의 곪아있던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온 분노의 표현이기도 했다. 임시방편으로 나무합판으로 유리를 틀어막은 상점 사진은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아도 비현실적이다. 2020년과 2021년은, 이뿐만 아니라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사당 폭동 등 정치, 경제, 사회에 걸친 불안정한 상황이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뉴욕은 9.11 테러, 허리케인 샌디, 금융위기, 심지어는 각종 전염병을 겪고도 금세 다시 회복하는 도시였지만, 이번만큼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재난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2020년 코로나 시기에 봉쇄된 뉴욕의 상점, 지금 봐도 비현실적인 모습이다


피폐함은 약한 곳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던가.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들불처럼 번진 일련의 사태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팬데믹으로 인해 준비 중이었던 헤이그라운드 오픈이 지연된 것이 가장 타격이 컸다. 뉴욕의 낙후지역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한국인이 만든 신생 비영리 조직.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하필 사업 추진에 있어 가장 탄력을 받아야 하는 2~3년 차에 팬데믹이라는 직격탄을 마주쳤고 외부 펀딩 유치는 번번이 실패했으며, 만일 계획대로 헤이그라운드를 열어야 한다면 조직운영비의 대부분을 공간 운영에 써야 할 형편이었다. 이건 사실 미국 국세청(IRS)이 봐도 의심스럽고, 나를 포함한 우리 이사회가 봐도 무리인 상황이었다. 굳이 IRS나 이사회를 언급하지 않아도, 그런 살림으로는 더 이상 조직을 유지할 능력도 이유도 공간도 없었다. 


팬데믹도 막지 못한, 우리의 초심

갑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준비되지 않은 작은 조직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초심을 지키는 것이었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초심은 도시의 소외/낙후지역을 위한 임팩트 창업 생태계를 짓는 일이었다. 우리는 도시를 이해하고 커뮤니티의 문제를 보며 기업가와 함께 지역의 솔루션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꿈꾸었다. 2020년에는 온라인으로 100% 전환하여 4기와 5기를 운영했고, 특히 5기는 여성 기업가를 위해 진행하였다. 2021년에는 6기와 7기를 운영했으며, 백신 접종률과 오미크론 추이를 지켜보며 7기 데모데이(Demo Day)는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데모데이는 맨해튼 할렘의 Maysles Documentary Center라는 작은 극장을 빌려서 진행했다. 극장에는 약 스무 명의 7기 기업가와 가족, 파트너 그리고 커뮤니타스 팀과 이사회, 뉴욕시정부 디지털 팀 담당자 등 커뮤니티의 파트너 등이 모였다. 팬데믹 중에 인연을 맺은 몇몇 재단과 미처 참여하지 못한 커뮤니타스 이사회 분들은 페이스북 온라인 라이브를 통해 스무 명의 발표를 지켜보고 있었다. 


2021년 12월에 열린 커뮤니타스 벤처스 7기 데모데이


소수자들을 위한 건강 보건 프로그램 “Haus of Ananda”의 창업자 네빌 그린은 7기에서 우승한 이후, 8기의 한 모임에 와서 이런 말을 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네트워크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파트너십을 만들었고, 협업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다. 커뮤니타스의 커뮤니티에는 창업을 지원하는 자원이 있고 또한 이 커뮤니티 자체가 가족이고 친구이기 때문이다.” 


2021년 말, 100명을 넘긴 프로그램 알럼나이의 사업은 교육, 건강/보건, 금융소외에 각 30%씩 분포되어 있었다. 해당 분야의 문제에 공감하면서도 각자 다른 솔루션을 가지고 있었기에, 협업과 파트너십을 통해 끈끈한 창업 생태계를 이뤄가고 있었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알럼나이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필요한 것을 듣고, 적절한 곳에 리소스와 파트너를 연결했다. 또,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에 필요한 파트너를 찾아서 컨택하여 때로는 거절당하기도, 연결되기도 하며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네트워크도 리소스도 정보도 전부 부족한 소외지역에서 창업자들이 설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커뮤니티를 통해 그 부족함을 채워야했다. 


2022년 초,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뉴욕주의 비즈니스 인큐베이터로 인증을 받으며 처음으로 외부 펀딩을 받게 되었다. 당시 세 개의 인큐베이터가 지정되었는데, 뉴욕의 주요 병원 네트워크 중 하나인 마운트 사이나이(Mount Sinai)의 의학 관련 창업생태계, 코넬의 농업/식량 관련 창업생태계와 함께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소외/낙후지역 커뮤니티 중심의 창업생태계 조성 노력이 주정부의 인정을 받았다. 


인큐베이터의 주요 요소 중 하나는 공간인데,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운영비용의 불균형과 IRS의 경고를 극복할 묘안을 찾지 못하여 브롱스에서 처음으로 염두에 둔 건물을 포기했다. 이후 다른 공간을 더 알아보고 그중 하나는 계약 직전까지 진행시켰지만 불리한 조건 탓에 결국 계약을 포기했다. 할렘에서 30년 넘게 사업을 하신 부동산 개발회사를 만나 2022년 6월 계약을 하고, 6개월 공사를 거쳐 2023년 1월 할렘에 헤이그라운드를 짓고 3월 오픈할 수 있었다. 


지역 임팩트 창업 생태계의 홈그라운드, 플레이그라운드 그리고 헤이그라운드 

2023년 3월 시작한 커뮤니타스 벤처스 10기 


작년 가을 파트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간단히 적은 바와 같이, 팬데믹은 집의 장소적 의미를 확대했고, 동시에 일에 대한 기대를 바꾸어 놓았다. 할렘에 헤이그라운드를 짓고, 커뮤니타스 벤처스는 3월에 10기를 시작했다


175명을 훌쩍 넘긴 프로그램 알럼나이들은 활짝 웃으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한다. 드디어 홈베이스가 생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 타운홀 미팅을 가지면서 정한 재정 목표, 임팩트 목표, 조직 목표는 하나하나가 기쁜 부담을 주었다. 헤이그라운드 할렘은 곧 많은 기업가들이 풀고 있는 교육 문제, 건강/보건 문제, 금융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으로 가득한 공간이 될 것이다. 팬데믹 중에 지켜왔던 초심이 드디어 공간의 힘을 만나게 된 것이다.


헤이그라운드 할렘의 내부 모습, 드디어 공간의 힘을 만난 순간이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고, 주목받지 못한 기업가를 위한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목표 하에 수많은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자본을 쓰고 있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선택이 이상을 좇는 돈키호테 같을지언정, 우리는 헤이그라운드를 만들면서 부동산 개발, 서플라이 체인, 투자 생태계, 배타적 커뮤니티, DEI의 두 얼굴, 구인구직, 정부 등 현실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뉴욕에 헤이그라운드를 지어볼까?’라는 생각은 금이 간 시스템을 발견하고, 기업가의 눈으로 문제를 함께 관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기업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였다. 앞으로는 지역과 장소를 중심으로 한 임팩트 창업 생태계를 함께 그려볼 생각이다. 


오늘은 헤이그라운드 할렘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했다. 앞으로는 미국의 자선/비영리 시장에 대한 개요, 펀드레이징, 자본시장의 물꼬를 트는 투자자의 이야기, 도시계획과 이해관계자, 인종문제와 편견, 문화와 창업자의 역할 등 많은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보다 구체적인 자료와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케이스 스터디를 통해 조금씩 소개하겠다.


*커뮤니타스 아메리카(Communitas America)
커뮤니타스 아메리카는 루트임팩트 자매사로서 2018년 미국에서 출발했다. 미국 뉴욕의 낙후된 지역에서 여성 및 BIPOC(Black, Indigenous, and people of color: 주로 백인 인종을 제외한 유색 인종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로 구성된 포용적이고 공정한 지역 경제를 조성하는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3년 3월 ‘헤이그라운드 할렘’을 오픈했으며 커뮤니타스 아메리카의 활동소식은 웹사이트 및  블로뉴스레터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필자 장선문 커뮤니타스 아메리카 대표 (Communitas America Executive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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