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연 | 빅이슈코리아
몰입이라는 희망
황소연 (빅이슈코리아)
에디터. 웃음을 찾아다니는 사람.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크고 작은 콘텐츠를 늘 끼고 생활하게 된다. 책이나 신문, 전문지를 읽기도 하고 유튜브나 릴스, 쇼츠, 틱톡같은 숏폼도 자꾸 들여다본다. OTT도 몇 개나 구독하고 SNS나 소셜커머스에서 무엇이 핫한지, 어떤 유행어나 밈이 인기인지 살핀다. 가끔 (사실 자주) ‘막장드라마’로 불리는 저세상 전개의 콘텐츠도 남몰래(?) 시청한다. 이런 습관이 익숙하지 않았던 몇 년 전에는 콘텐츠의 구성이나 담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밝혀내고 확인하려고 했는데, 해가 거듭하면서 이런 태도에 변화가 발생했다. 바로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생겼다는 점이다.
무대인사는 왜 이렇게 재밌을까
각종 플랫폼에서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열띤 토론과 덕질을 지켜보는 것이 올해 나의 강력한 ‘도파민’이었다. 올해 초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통해 <슬램덩크>에 입문한 나에게, 몇 십년 간 북산을 비롯한 고등학교 농구팀의 이야기를 마음 깊이 품어온 팬들의 반응은 정말 재미있는 볼거리이자 이야깃거리였다. 이미 큰 인기를 끈 작품임에도, <슬램덩크>의 오랜 팬들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며 뉴비를 환영했다. 원작 작가이자 영화를 감독한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관객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모르셨던 분에게는 처음인, 알고 계셨던 분에게는 알고 있었지만 처음 만나는, 슬램덩크를 마음껏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긴 시간 켜켜히 쌓아올린 작품만의 레거시를, 오랜 팬과 새로운 팬이 함께 즐기는 광경의 아름다움은 이노우에 감독의 이 말로 완성됐다.
<슬램덩크> 만화책 세트를 구입하고, 애니를 시청하고, 영화를 N차 관람한 나의 광기가 잠잠해질 때 쯤, 또 다른 콘텐츠가 눈에 띄었다. ‘무대인사’였다. 개봉한 영화의 개봉 첫 주에 집중되고, 흥행에 따라 더 열리기도 하는 이 행사에, 사실 나는 가본 적이 없다. 표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무대인사에 간 팬들의 경험담과 길어야 30초 정도인 짧은 영상을 볼 뿐이다. 그것도 콘텐츠로 치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수많은 무대인사 후기들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다. 20대부터 60대까지 아주 다양한 연령대의, 각각의 필모그래피를 가진 배우와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영화를 보러와 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영화를 아껴 주고 사랑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재밌는 농담도 던진다. 팬들이 놀이공원이나 인생 네컷 부스에 비치됐을법한 귀여운 머리띠를 건네면 배우들은 그걸 쓰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고, 손으로 같이 하트를 만들어 셀카도 찍는다. ‘주접’이 난무하는 팬들의 플랜카드를 읽는 것도 정말 재미있다. 카메라 렌즈와 아이컨택이 되기라도 하면 팬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나는 온라인 세상에서 목격했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주고받는 아티스트들과 팬들의 마음은 나에게 알 수 없는 감동을 줬다.
‘중꺾마’를 기억했던 2023년처럼
해가 거듭할수록 길잡이가 되어 줄 문장이나 단어를 찾게 된다. 2022년을 마무리하고 2023년을 시작하면서 가장 자주 떠올린 키워드는 ‘중꺾마’였다. 애써 발견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축구 국가대표팀의 승리과 도전정신이 몸과 마음에 흡수됐다. 게다가 새해의 시작을 영화 덕질로 한 나로선 이를 계기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왜 중요한지 생각하게 됐다.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 각본 없는 드라마로 감동받는 건 물론 식상하고 자주 듣는 얘기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일상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덕질은, 콘텐츠에 대한 얘기는 일상의 고됨을 잊을 수 있는 중요한 몰입이다.
그래서 2023년이 마무리되는 지금, 다시 ‘중꺾마’를 떠올렸던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를 회상 해본다. 정확히는, 나처럼 이 단어를 되새겼을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몸과 정신이 지치고 힘들 때 축구라는 콘텐츠, 드라마를 보고 희망과 열기를 가졌을 누군가의 마음. 전에 없던 용기가 생겨,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노력했을 사람들의 마음. 또, 서로가 꺾이지 않도록 도왔던 이들의 마음. 새해에도 나는 몰입이 주는 이 아름다운 희망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아, 2023년 말 버전의 ‘중꺾마’ 콘텐츠로 <골든 걸스>를 추천하고 싶다. ‘골든 걸스’ 멤버 인순이는 이렇게 말했다. “허들 이제 하나 넘었거든요? 또 넘어봐야죠.”
글을 읽고 들었던 생각, 작가님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싶다면? 이 곳을 클릭해 의견을 남겨주세요.
이 글은 '2023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황소연 | 빅이슈코리아
몰입이라는 희망
황소연 (빅이슈코리아)
에디터. 웃음을 찾아다니는 사람.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크고 작은 콘텐츠를 늘 끼고 생활하게 된다. 책이나 신문, 전문지를 읽기도 하고 유튜브나 릴스, 쇼츠, 틱톡같은 숏폼도 자꾸 들여다본다. OTT도 몇 개나 구독하고 SNS나 소셜커머스에서 무엇이 핫한지, 어떤 유행어나 밈이 인기인지 살핀다. 가끔 (사실 자주) ‘막장드라마’로 불리는 저세상 전개의 콘텐츠도 남몰래(?) 시청한다. 이런 습관이 익숙하지 않았던 몇 년 전에는 콘텐츠의 구성이나 담고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밝혀내고 확인하려고 했는데, 해가 거듭하면서 이런 태도에 변화가 발생했다. 바로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심이 생겼다는 점이다.
무대인사는 왜 이렇게 재밌을까
각종 플랫폼에서 콘텐츠에 대한 사람들의 열띤 토론과 덕질을 지켜보는 것이 올해 나의 강력한 ‘도파민’이었다. 올해 초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통해 <슬램덩크>에 입문한 나에게, 몇 십년 간 북산을 비롯한 고등학교 농구팀의 이야기를 마음 깊이 품어온 팬들의 반응은 정말 재미있는 볼거리이자 이야깃거리였다. 이미 큰 인기를 끈 작품임에도, <슬램덩크>의 오랜 팬들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며 뉴비를 환영했다. 원작 작가이자 영화를 감독한 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은 관객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모르셨던 분에게는 처음인, 알고 계셨던 분에게는 알고 있었지만 처음 만나는, 슬램덩크를 마음껏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긴 시간 켜켜히 쌓아올린 작품만의 레거시를, 오랜 팬과 새로운 팬이 함께 즐기는 광경의 아름다움은 이노우에 감독의 이 말로 완성됐다.
<슬램덩크> 만화책 세트를 구입하고, 애니를 시청하고, 영화를 N차 관람한 나의 광기가 잠잠해질 때 쯤, 또 다른 콘텐츠가 눈에 띄었다. ‘무대인사’였다. 개봉한 영화의 개봉 첫 주에 집중되고, 흥행에 따라 더 열리기도 하는 이 행사에, 사실 나는 가본 적이 없다. 표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무대인사에 간 팬들의 경험담과 길어야 30초 정도인 짧은 영상을 볼 뿐이다. 그것도 콘텐츠로 치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수많은 무대인사 후기들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다. 20대부터 60대까지 아주 다양한 연령대의, 각각의 필모그래피를 가진 배우와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영화를 보러와 준 관객들에게 인사를 한다. 영화를 아껴 주고 사랑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재밌는 농담도 던진다. 팬들이 놀이공원이나 인생 네컷 부스에 비치됐을법한 귀여운 머리띠를 건네면 배우들은 그걸 쓰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고, 손으로 같이 하트를 만들어 셀카도 찍는다. ‘주접’이 난무하는 팬들의 플랜카드를 읽는 것도 정말 재미있다. 카메라 렌즈와 아이컨택이 되기라도 하면 팬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나는 온라인 세상에서 목격했지만, 영화라는 매체를 주고받는 아티스트들과 팬들의 마음은 나에게 알 수 없는 감동을 줬다.
‘중꺾마’를 기억했던 2023년처럼
해가 거듭할수록 길잡이가 되어 줄 문장이나 단어를 찾게 된다. 2022년을 마무리하고 2023년을 시작하면서 가장 자주 떠올린 키워드는 ‘중꺾마’였다. 애써 발견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축구 국가대표팀의 승리과 도전정신이 몸과 마음에 흡수됐다. 게다가 새해의 시작을 영화 덕질로 한 나로선 이를 계기로 꺾이지 않는 마음이 어떻게, 왜 중요한지 생각하게 됐다. 스포츠맨십과 페어플레이, 각본 없는 드라마로 감동받는 건 물론 식상하고 자주 듣는 얘기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일상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덕질은, 콘텐츠에 대한 얘기는 일상의 고됨을 잊을 수 있는 중요한 몰입이다.
그래서 2023년이 마무리되는 지금, 다시 ‘중꺾마’를 떠올렸던 지난해 연말과 올해 초를 회상 해본다. 정확히는, 나처럼 이 단어를 되새겼을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몸과 정신이 지치고 힘들 때 축구라는 콘텐츠, 드라마를 보고 희망과 열기를 가졌을 누군가의 마음. 전에 없던 용기가 생겨,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마음이 꺾이지 않도록 노력했을 사람들의 마음. 또, 서로가 꺾이지 않도록 도왔던 이들의 마음. 새해에도 나는 몰입이 주는 이 아름다운 희망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아, 2023년 말 버전의 ‘중꺾마’ 콘텐츠로 <골든 걸스>를 추천하고 싶다. ‘골든 걸스’ 멤버 인순이는 이렇게 말했다. “허들 이제 하나 넘었거든요? 또 넘어봐야죠.”
글을 읽고 들었던 생각, 작가님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싶다면? 이 곳을 클릭해 의견을 남겨주세요.
이 글은 '2023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