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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클내향형 애주가의 고민 <2023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지독한 술쟁이 | 루트임팩트

내향형 애주가의 고민  





지독한 술쟁이 (루트임팩트)

헤그에 조용히 출몰해서 기력없이 둥둥 걸어다닙니다. 술 마신 다음 날에는 유령처럼 떠다니지만 누군가와 마주치면 살아나요!




음주를 애정하는 직업인입니다. 언제나처럼 술을 많이 마셨던 한 해였는데 올해는 술 마시는 것에 대한 고민이 좀 길었습니다.  


저는 술을 참 잘 마십니다. 음주 여부를 묻는 말에는 항상 “술을 좋아해요.”라고 답합니다. 평소 차분하고 조용해 보여서인지 늘 의외라는 반응입니다. 그러면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저는 ‘술 잘 마시는 사람’이라고 하면 성격이 쾌활하고 목소리에 힘이 있고 어쩐지 술톤이라고 하는 홍조를 띤 피부에 늘 미소를 머금고 있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늘 주변에 사람이 많은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내향적이고 말이 적은 저도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잘 마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어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든 걸까요? 적고 보니 술 잘 마시는 게 뭐라고, 조금은 우스운 마음도 듭니다.  


그런데 고민은 무엇이냐. 술을 마시는 사람들과는 쉽게 친해지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과 친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어릴 적에는 그런대로 술 마시는 친구들만 자주 만나고 어울리며 잘 지냈지만 한 살 한 살 나이가 더해질수록 고민이 깊어집니다. 늘 술을 마셔야 친해졌는데 술이 아니고서 친해질 방법을 점점 더 모르겠습니다. 술자리에서는 상대에게 먼저 가벼운 질문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일을 할 때도 업무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동료와 점심을 같이 먹으러 걸어가는 길이나 단둘이 밥을 먹게 될 때처럼 맨정신의 일상(?)에서는 먼저 말을 꺼내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동료에게는 사적인 질문을 잘 하지 않으니, 질문이 겉돌기도 하고 대화가 뚝 끊기기도 합니다. 심지어 질문해 놓고선 답을 듣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아무 말이나 일단 해버리고는 어색한 정적을 막기 위한 다음 질문을 생각하느라 집중 못하는 것이지요. 질문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을 때는 상대방이 물어보지 않은 제 이야기를 마구 늘어놓기도 합니다.  


게다가 몇 달 전 SNS에서 게시글 하나를 보게 됩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스쳐 갔을 책 홍보 게시글이었는데, ‘살면서 피해야 할 유형’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모든 대화 주제를 자연스럽게 자기 얘기로 만들고 마무리해 버리는 사람’ 이 그중 한 유형으로 꼽혔습니다. 읽어보니, 어떤 주제로 대화를 시작해도 상대의 의견이나 생각을 듣지 않고 결론을 본인의 경험담, 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해 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번쩍! 왠지 곧 그런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리가 갑자기 곧게 펴집니다. 어색함을 피하려고 내 이야기를 죽죽 늘어놓다가 결국 피해야 할 유형의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이러다 사람에 대한 제 생각의 범위가 여기서 멈춰 더 확장되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도 듭니다. 이 생각이 깊어지니 술 마시는 자리도 집중이 어렵고 재미가 없습니다.  


일상에서 대화 주제를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동료들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상대를 무척 궁금해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연결해 상대에게서 또 다른 이야기를 끌어내기도 하고, ‘만약에…’로 시작하는 재밌는 상상에 대한 생각을 묻기도 합니다. 대화가 끊겨 어색한 기류가 흐르더라도 지금까지 상대에게 들었던 이야기에서 또 다른 궁금증을 꺼내어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아, 이야기를 정말 잘 듣고 상대를 궁금해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동료들을 보며 제가 조용하고 말이 없다고 해서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 착각으로 말이 없는 스스로를 ‘경청하는 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그렇지 않은 적이 더 많았던 것이지요.  


술을 마실 때는 질문할 용기도 더 생기고 어쩐지 상상력도 풍부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그러려면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해야 합니다. 다음날이면 같이 술 마셨던 사람들과 데면데면하더라도 해장을 함께하며 “이제는 술을 줄여보겠다”는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와 웃음을 주고 받으며 더 친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제가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이유였던 듯합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술의 힘이 아니라 저의 힘으로 사람들과 친해져야겠습니다. 언제까지고 저의 몸이 술을 잘 해독해 낼 수 없고 맨정신으로 잘 버텨내야 할 시간도 점점 많아집니다. 


나의 힘으로 사람들과 친해지다 보면 만취하고 싶은 생각도 덜 들게 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세계가 더 커지는 것 같다’던 동료의 말이 떠오릅니다. 저도 다른 사람에게 ‘의외로 술 잘 마시는 사람’보다는 새롭고 흥미로운 세계가 되는 편이 더 좋습니다. 부단히 노력해야겠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내향적이고 조용한 이미지 뒤에 더 숨지 않고,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싶은 욕망을 발견하게 된 것 같습니다.  


헤이그라운드 어딘가에 저와 같은 분이 또 계실까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진부한 응원을 은근히 전해보며, 끝까지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결론은 절대 쓰지 않은 저의 필명을 지독한 술쟁이로 정하고 글을 마무리합니다. 








글을 읽고 들었던 생각, 작가님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싶다면? 이 곳을 클릭해 의견을 남겨주세요.


이 글은 '2023년 헤이그라운드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멤버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헤이그라운드는 체인지메이커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오피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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